단편소설을 통하여 간결하고 현대적인 문체로 문장혁신에 공헌하였다.
이광수(李光洙)의 계몽주의적 경향에 맞서 사실주의적(寫實主義的) 수법을 사용하였으며, 1925년대 유행하던 신경향파(新傾向派) 및 프로문학에 맞서 예술지상주의(藝術至上主義)를 표방하고 순수문학운동을 벌였다. 1924년 첫 창
대한제국의 대구 우체국장이었고, 그의 仲兄(중형)은 상해 임시 정부의 청년당 간부로서 활약하다가 피검되어 옥사하였다. 가정환경의 영향을 받아 사회의식이 강한 현진건의 문학은 당시의 사회 상황을 많이 반영하고 있으며 날카로운 비판 정신을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그의 작품을 통해 1920년대의
성성중학을 졸업하고 다시 동경 독일어 학교를 졸업한다. 이어 1918년 형 정건을 찾아 상해로 건너갔으며, 거기서 호강대학에 입학하였으나 1919년 중퇴하고 만다.
귀국 후 오촌당숙인 현보운이 1919년 죽자 그의 집에 들어가서 서서히 문학수업을 시작하여 조선 웅변회를 조직하여 활동하면서 외국 소
소설에서 한 단계 발전된 것이었다. 또 김동인은 간결하고 개성적인 문체를 통해 단편소설의 특징을 잘 살리고 있다. 이로 인해서 현대적 단편소설이 확립되었다.
이와 함께 현진건이나 염상섭 등에 의해 시도된 사실주의적인 소설은 주로 단편소설을 중심으로 작품화되면서 1920년대 소설사의 중
민족주의를 표방하고, ‘개벽’, ‘서광’, ‘학생계’ 등의 종합지와, ‘창조’, ‘폐허’, ‘백조’, ‘장미촌’, ‘영대’ 등 문예 동인지가 창간되고, 개벽사와 한성도서 등의 출판사가 등장하여 근대적 유통구조 기반을 형성한다. 이러한 기반 아래 1910년대의 소설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는 모습도